도시는 단순한 건물들의 집합이 아니다. 도시에는 사람의 질서, 권력의 구조, 문화의 방향이 담긴다.
수메르 문명은 인류 최초로 계획된 도시를 세운 문명이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루크(Uruk)**와 **우르(Ur)**이다.
이 도시들은 단순히 거주지를 넘어서, 행정, 종교, 경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최초의 도시계획 모델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고대 도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수메르의 도시 설계 방식을 살펴보며,
우루크와 우르가 어떻게 도시 문명의 기초를 세웠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우루크: 도시 문명의 시작
우루크는 기원전 4천 년경 등장한 수메르의 대표 도시로, 인류 최초의 진정한 도시로 평가된다.
기원전 3,000년 무렵에는 약 4만 명 이상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당시 인류 문명 가운데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였다.
우루크의 도시 설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 중심에는 신전 지구: 이난나(이슈타르)를 위한 대형 지구라트와 신전이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함
- 주거지의 구역화: 계층에 따라 주거 공간이 구분되었으며, 하층민과 귀족의 거주지가 분리됨
- 운하 및 배수 시스템: 자연 강줄기를 따라 도시 내부에 인공 운하를 설계, 치수와 운송을 동시에 해결
- 외곽 성벽: 도시 전체를 둘러싸는 강력한 방어용 성벽이 존재, 이 역시 계획된 구조물이었다
특히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묘사된 "우루크의 성벽"은, 당시 도시가 얼마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설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우르: 계획도시의 진화
우르 역시 수메르 문명의 대표 도시로, 우루크보다 다소 후기에 발전했지만, 도시 설계의 정교함은 한층 진화된 형태를 보인다.
우르는 특히 우르남무 왕조 시기에 절정을 이루며, 행정 중심 도시로 기능했다.
우르의 도시 구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 계단식 사원(지구라트)의 중심 배치: 우르의 지구라트는 삼단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주거 지역과 상업 지역에서 모두 시각적으로 중심이 되는 구조물이었다. - 상업 지구의 분리: 수공업자, 상인, 창고지대 등이 구체적으로 구획되었으며,
운하를 따라 물류가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 도로망 구축: 중심 신전에서 방사형으로 퍼지는 도로 구조가 존재,
이는 고대 도시 중 보기 드문 계획형 도로망이다. - 공공 행정 건물 존재: 세금 징수소, 재판소, 기록보관소 등 행정 기능을 갖춘 건물들이 도시 구조에 포함됨
이처럼 우르는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가 통합된 복합도시였으며,
오늘날의 수도 기능을 떠올리게 하는 계획적인 도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도시 설계의 중심에는 신전이 있다
수메르의 도시들은 공통적으로 도시 중심에 신전과 지구라트를 배치했다.
이것은 수메르 사회가 신권 중심 사회였음을 보여주는 요소이며,
도시 설계 자체가 종교와 정치의 결합 구조로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신전은 단순한 종교 공간이 아니라, 창고, 회의장, 법정, 학교로도 사용되었고,
도시 운영의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복합 행정 기구였다.
점토판으로 남은 도시 설계
우르와 우루크에서 발굴된 수많은 점토판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도시 계획의 청사진 역할을 했다.
도로의 폭, 창고 위치, 수로 길이 등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은 수메르 문명이 이미 공간 기획과 토목 설계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우르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신전 남쪽 벽을 따라 40보의 거리로 수로를 파고, 상인들의 창고가 그 길목에 접하게 하라.”
이는 지금으로 치면 도시계획국에서 작성한 공공 인프라 개발 지침서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결론
수메르의 도시 설계는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서 사회의 구조와 이념을 공간에 담아낸 체계적인 시도였다.
우루크는 인류 최초의 대도시로서, 도시라는 개념 자체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우르는 계획 도시의 완성형으로서, 행정과 종교가 통합된 복합 도시 모델을 제시했다.
이 도시들은 오늘날의 도시 설계 원칙—중심축, 기능별 분화, 교통망, 공공 인프라—에 영향을 끼친 선구적 사례이며,
우리가 사는 현대 도시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수메르 도시의 흔적은 오늘날의 거리와 도시 구조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